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처인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파일:external/hawkebackpacking.com/south_korea_seoul_war_memorial_07.jpg|width=700]] ▲처인성 전투의 상상화[* [[전쟁기념관]] 소장. 그림 왼쪽에 있는 승장(僧將) [[김윤후]]의 활을 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런지 [[국사]] 교과서 등에 이 사진이 올라오면 매우 높은 확률로 [[교과서 낙서]]의 희생양이 된다(...)][* 상상화라 상식적으로 저지를 이유가 없는 장면이 들어가있는데, 바로 [[몽골군]] 기병들이 [[맨땅에 헤딩|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토성에 돌진하는 중]]이라는 것(...).][* 사실 몽골 기병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마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추후 김윤후와 재대결하는 충주성 전투에서도 성벽 아래 나무와 풀 등으로 디딤대를 쌓아 성벽 위로 말을 탄 채 뛰어올라서 성벽을 제압하려고 시도했으나 충주성 측에서 바로 불을 던져버려서 무위로 돌아간 적이 있다. 따라서 저 그림에 묘사된 대로라면 처인성 정도의 작고 완만한 외부경사를 지닌 성 정도는 몽골 기병에게 전혀 어렵지 않다. 하지만 문제는 현실에서는 저 성벽 위에 목책 같은 것이 꽤 높이 올라가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라는 것.] 제2차 여몽전쟁의 전투 가운데 하나로, 처인부곡(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)에서 고려의 [[승병|승장]]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저격해 사살한 뒤 몽골군을 대파시킨 전투이다.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주축으로 몽골군을 상대하여 성공적인 방어전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. 여몽전쟁의 가장 주요한 승리 중 하나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